유학(儒學)이 사라져 가는 지금 시대, 남명(南冥)을 통해 유학의 본질을 살펴본다.
중국에서 유학은, 공자가 이전의 전통을 집성한 이후로 한무제 유철(劉徹)의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단지 제자백가 중 하나에 불과했다. 공자마저도, 제나라에서 유가는 현실적으로 별 쓸모가 없다는 안영의 간언 때문에 등용되지 못했고, 맹자도 실제 정치에서 유학의 이념을 펼치지는 못했다. 공자 맹자와 다른 견해를 가졌던 순자의 제자들이 유가에서 벗어나 법가사상을 만들고서야 그 뜻을 펼칠 수 있었다. 유가가 법가로 변형되고, 다시 법가는 유가를 앞세워 양두구육식으로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고서야 천하를 호령하였다.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성만을 주장하는 하나의 이념이 되고부터 유가는 유학이 되고, 유교가 되었다. 맹자 이래로 다른 사상을 이단으로 몰아서 배척하는 풍토는 유가의 특징이다. 맹자는 ‘천하가 온통 양주 아니면 묵적으로 돌아갔다’고 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공격하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 시절 천하는 왜 양주 아니면 묵적으로 돌아갔을까? 통치자들은 부국강병을 원했고, 일반인들은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성리학의 형성과 전개도 유사한 길을 걸었다. 북송초기 성리학자는 불교와 도교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스스로 도교나 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다. 주희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면서 평생 선불교와 도교비판에 열을 올렸고 때론 같은 성리학자라도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은 또한 배척하였다. 결국 주희도 만년에는 그 인품과 학문이 거짓으로 몰려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런 주자학은 원나라가 중국 통치 때 통치이념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그래도 중국은 나라가 크고 인구가 많은 것만큼 다양한 사상이 있어서 주자학의 절대성에 대해서도 일정한 비판의 소리를 내었다. 주자학에 대항하는 양명학도 있었고, 고증학은 성리학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고려 말까지 유학은 정치에서 약간의 역할을 하는 수준이었고, 불교와 선도가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 성리학 독주의 시대가 열리고,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한 뒤로는 오직 주자학만이 유일한 학문이며, 이념이고, 삶이었다. 이런 시기에 초기사림파의 실천성리학을 이어 영남사림파를 양분하여 강우학파를 형성한 남명 당시의 대표적 지성이었다. 1980년 이전까지 학계에 그 존재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남명은, 불과 30년 만에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의 반열에 올라섰다. 필자는 남명의 특징을 경과 의를 사상의 바탕으로 삼아, 사화의 시대에 선비의 기상을 세우고, 국정 비판에 사림의 언로를 열었으며, 위민정치를 주장했고, 많은 제자를 길러 국난 때 구국의 선봉에 서게 했던 것이라 본다. 성리학을 고담준론하는 것은 그의 장점이 아니었으니, 그의 특징은 바로 ‘실천’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성리학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학풍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성리학이란 오로지 주자학 아닌가? 남명이 왜 당대부터 그렇게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을까? 그 답은 바로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실천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던가? 필자는 성리학의 예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면서 향촌사회의 예법을 교화하여 바꾸고, 이것이 하나의 전형이 되어 지역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거대한 학파를 형성한 것이다.
오늘날 유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유학경전을 읽는 일반인이나, 유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많다. 그 속에서 뭔가 오늘날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것이 절대로 ‘리기심성론’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유학은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 비해서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다. 유학의 경전과 예서들을 통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발견하고, 이 시대에 맞는 사회적 행동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오늘날 유학의 존재의미가 아닐까!
▌저자 소개▐
저자 김경수金敬洙
1962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여, 경상대학교 철학과에 1회로 입학하여 동 대학교에서 제1호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에서 박사후연수를 마쳤으며, 2013년도 한국도교학회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사)남명학연구원의 초대 사무국장 및 상임연구위원을 역임하였고, 이후 경상대학교를 비롯하여 진주지역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였으며 지금도 강의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시행한 경남지역 목판조사에 참여하였고, 문화재청에서 발주한 고문서 조사위원으로도 참여하였으며,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및 의령의 의병박물관 비상임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였고, 한국동양철학회 17대 총무이사를 역임하였으며, 고성군지편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북송초기의 삼교회통론』,『남명 선생 문인자료집』(공저),『사고와 논리의 기술』(공저) 외 몇 권이 있으며, 편저로는『남명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 있고, 번역서로는『효당집』이 있다. 논문은 「진단의 내단이론과 삼교회통론」 외 다수가 있다. 근래에는 주역과 음양오행에 대한 공부를 정리하면서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삼교회통의 역사와 맥락 그리고 동양의 고대천문학 등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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